학교의 1, 2월은 졸업과 함께 교직원들의 인사이동이 많아 모두가 뒤숭숭한 시기이다. 공립학교는 5년의 순환근무 원칙 때문에 교사 5명 중 1명은 해마다 학교를 옮겨야 한다. 그리고 휴직에 들어갔던 교사들의 복직 여부에 따라 기간제 교사들도 학교를 그만두거나 다른 학교로 떠나야 한다. 교장, 교감, 행정실 식구들도 승진이나 전근발령에 따라 학교를 옮기고, 정년퇴직이나 명예퇴직으로 영영 교직을 떠나는 동료들까지 있으면 도대체 누가 남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면 떠나가는 사람들은 섭섭하고 보내는 사람들은 아쉬워
요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사랑과 칭찬을 받고 자란다. 초등학교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영재’라는 이름으로 특별 교육과 대우를 받는다. 학원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수준의 영어와 수학을 다 끝마쳐준다. 중학교에 입학하여 내 아이가 이른바 ‘전교권’ 성적을 받을 것으로 굳게 믿고 있는 부모들의 콧대는 하늘을 찌른다. 2학년 학부모들이 다소 겸손해지는 것은 1학년 성적표의 영향이 크다.지금의 학부모들 역시 ‘둘만 낳아 잘 키우자’던 1970~1980년대 태어난 세대들이다. 형제가 많아 늘 경쟁하고 다투고 부모에게 혼나면서 자란 이전
“뭐 학교가 이 따위야!”교무실 문 앞에서 한 아이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일을 하다가 깜짝 놀라 아이에게 물어보니 선생님이 지각한 자기를 교무실로 내려오라고 했는데 5분을 기다려도 안 온다는 것이었다. 벌점 주신다고 했으면 벌점이나 주지 왜 오라가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등 여러 선생님들 앞에서 씩씩댔다. 그 학생은 급한 업무를 해결하느라 5분 늦은 선생님에게 “5분이나 늦으면서 왜 학생의 지각에 대해 뭐라 하느냐”고 마치 훈계하듯 따지고 들었다.내년부터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사용하던 벌점제도가 일선학교에서 사라질 것
1990년대 말 중·고 남녀공학에서 여학생 전교회장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기사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당시 내가 근무하던 중학교에서도 한 여학생 후보가 남학생 후보들을 제치고 학생회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여학생 후보는 학생복지에 대해 현실감 있는 공약을 앞세워 남학생 후보들을 압도적 표차로 제쳤다.당시만 해도 여학생 학생회장이 뽑힌 것 자체가 뉴스였다. 그도 그럴 것이 1970년대만 해도 회장·반장은 남자, 부회장·부반장은 여자로 미리 정해놓고 선거를 했었다. 1980년대 들어서는 남자 회장, 여자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수업에 필요한 학생들의 준비물을 아이들이 가져오지 않고 담임교사가 일괄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자녀의 준비물을 구하려고 늦은 밤에 문방구와 마트를 돌아다녀야 하는 맞벌이 가정의 수고도 덜고 선생님 한 분이 수고하면 한 반, 혹은 학년 전체가 편할 수 있으니 경제적이고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중학교에 올라온 학생들도 초등학교 때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 것을 학교와 교사들에게만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실제 많은 중학교에서도 실기과목의 준비물을 학생이 구입하지 않고 학교 예산으로
형제가 서너 명 이상이던 50~60대 어른 세대와는 달리 요즘은 아이들이 아예 없거나 한둘인 가정이 대세다. 사회 전체적으로 아이들이 귀하다 보니 학교에서의 학생들 ‘위상’도 예전보다 높아졌다. 교사들은 자신들이 다니던 옛날 학교 문화를 생각하면서 버릇없는 요즘 아이들에게 혀를 차고, 아이들은 그런 교사나 어른들이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하소연한다. 중국의 어린 소황제 이야기가 우리의 현실이 되다 보니 매일 소황제와 그 부모들을 상대해야 하는 교사들은 감정노동자가 되어 상처받은 마음을 스스로 다스릴 수밖에 없다.얼마 전 학교에서 예의
최근 3학년 학생들과 함께 수학여행을 갔다왔다. 모든 교사들이 느끼는 바이지만 수학여행 인솔교사는 고단하다. 교사들이 모든 일정을 학생들과 같이 다니면서 관광도 하고 체험활동도 해야 하기 때문에 몸이 고되고 사고 가능성도 있어 더 많이 신경을 써야 한다. 게다가 요즘은 한 학년이 같은 여행 코스, 같은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끔찍했던 세월호 사건처럼 한 학년 전부를 잃을 수 있는 사고를 막자는 취지인데, 두세 반씩 쪼개어 여행하는 일은 답사 준비부터 몇 배의 수고와 절차가 필요하다. 그러나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
얼마 전 인터넷 메인 화면에 뜬 학교 화장실 관련 기사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기사는 우리나라의 많은 중·고등학교에서 교직원 화장실과 학생 화장실을 따로 둔 것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교직원 화장실에 대한 학생들의 사용 제한이 권위주의적인 발상이며 차별이라는 것이었다.기사를 읽은 후 많은 사람들이 이 기사에 동조해 비판적인 댓글을 많이 올렸을 것이라고 짐작하면서 댓글을 읽어나갔다. 그런데 예상외로 지저분하게 화장실을 사용하는 학생들의 매너에 대해 지적하고 비판하는 댓글이 더 많았다. 많은 네티즌들은 학교 화장실에 얽힌 자신의 추억과
교사들이 1년 중 가장 불안해하고 예민해지는 달이 3월이다. 개학을 하면 교사 가족들도 집안에서 ‘쌤’ 눈치를 보고 말 섞기를 꺼려 한다. 물론 학생들도 새로운 학교, 새로운 담임, 새로운 친구들이 부담스럽고 변화된 상황 속에서 긴장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3월 2일 개학을 앞두고 가장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은 단연코 교사들이다. 특히 전근을 가서 완전히 낯선 학교로 출근해야 하거나, 생소한 학교 일을 맡게 되어 업무 파악도 못한 상태로 학교를 가야 하는 교사들은 불안하여 뜬눈으로 새 학년을 맞기도 한다.스트레스 최고는 역시 담임을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중고등학교 졸업식은 교사들에게 공포와 근심의 시간이었다. 졸업식이 끝난 후 ‘노는 아이들’ 몇 명이 모여 밀가루, 달걀, 케첩을 서로 뿌리고 교복을 찢는 엽기적인 뒤풀이 문화가 골칫거리였다. 자기들끼리는 억눌리고 강요되었던 학교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를 획득했다는 자축일지 몰라도 3년을 함께한 교복을 찢고 머리에 밀가루를 뒤집어쓴 채 알몸으로 뛰어다니는 행동은 치기 어린 장난을 넘어 혐오감을 일으키게 했다.모든 교사들은 졸업식 전부터 교문을 통과하는 수상한 물건들을 일일이 검사하였고 학교 화장실이나 사물함에 미리
현 중학교 1학년은 한 학기 동안 ‘자유학기제’로 학제가 운영되고 있다. 이 기간에는 오전에는 기존대로 교과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자신들이 선택한 스포츠, 예술, 창작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현재 한 반의 인원수가 30명 정도인데 오후 수업에는 20명 전후가 한 반을 이룬다. ‘자유학기제’ 운영 기간에는 중간·기말시험이 따로 없고 수업 중 교사가 학생을 관찰한 내용이나 수업 결과물 평가 등을 생활기록부에 서술식으로 기록한다. 점수나 등수로 학생이 평가받지 않으므로 이 기간 동안만큼은 학생과 학부모 모두 시험 스트레스에서
요즘 웬만한 학교에는 체육관 건물이 있다. 대부분 1층은 학생식당이고 2~4층은 천장이 높은 체육관으로 사용된다. 체육관은 거의 하루 종일 가동된다. 평상시에는 체육 수업과 방과후 수업으로, 저녁시간과 주말에는 배드민턴이나 농구 등 동네 사회체육 공간으로 활용된다. 학교에 행사가 있을 때는 강당으로 변신하여 입학식, 졸업식 등이 이곳에서 열린다. 이럴 경우 체육관 바닥에 500개 이상의 접이식 의자를 펼쳐 놓아야 하는데 행사가 끝나면 다시 접어 무대 밑의 서랍식 공간에 넣어야 한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은 여
11월 11일은 중학교 학생들의 3대 명절 중 하나인 ‘빼빼로 데이’이다. 학생들은 ‘밸런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와 함께 이날을 아주 중요한 날로 여긴다. 사탕, 초콜릿, 빼빼로 과자를 잔뜩 들고 와서는 서로 나눠 주고 함께 먹으면서 마치 축제인 듯 즐긴다. 빼빼로 과자를 가방과 양손에 가득 들고 온 학생들은 서로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를 견주며 자신의 우정과 인기를 가늠해 보기도 한다.올해 11월 11일에 출근해 보니 손가락 굵기의 빼빼로 과자 한 개씩이 선생님 책상 몇 곳에 놓여 있었다. 선생님들은 수업하는 반을 추리해 보면
중학교 남학생들은 게임 없이 못살고 여학생들은 화장 안 하고는 못산다. 남학생들은 시험 마지막 날에는 종례시간도 못 참고 빨리 끝내달라고 아우성이다. 조금만 늦게 가면 근처 PC방에 자리가 없다며 청소도 빼먹고 튈 기세이다. 반면 여학생들은 1학년부터 화장에 관심이 많고 2학년쯤 되면 반 이상이 진한 화장을 한다. 화장을 지우도록 지도를 해도 다음 시간에 또 화장을 하고 앉아 있다.화장이 서투르니 무조건 얼굴은 하얗게 두드리고 입술은 빨갛게 칠한다. 교실이나 학교 계단에 걸려 있는 거울 옆 벽에는 입술에 너무 많이 발라 남은 틴트(
요즘 김영란법 때문에 공무원 사회와 일반 기업에서는 말들이 많다. 하지만 공무원 중에서도 학교 교사들은 조용한 편이다. 왜냐하면 현재 학교 현장에서 적용되고 있는 청렴 관련 기준이 김영란법보다 훨씬 더 강력해서 김영란법 정도는 느슨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학교에 발을 내디딘 1990년대는 달랐다. 지금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소문들이 떠돌아다니곤 했다. 교장이 바뀔 때마다 학교의 페인트칠과 정화조 청소 주기가 달라지고 특별실을 조성하라고 내려온 돈의 일부가 상부로 흘러들어갔다는 등 학교의 크고 작은 계약에 뒷돈이 오
중학생들은 보통 사춘기의 절정을 지나는 아이들이다. 학교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활화산처럼 아이들이 내뿜는 열기와 활기로 늘 시끌벅적하다. 말썽도 끊이질 않는다. 서로 싸우고, 선생님에게 대들고, 심지어 물건까지 훔친다.하지만 천방지축에다 말썽만 피우는 줄 알았던 아이들이 대견스러워 보일 때가 있다. 10여년 전 전형적인 ‘서민 동네’ 남자중학교의 1학년 담임을 맡은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반에는 유달리 작고 산만하고 까불대는 아이들이 많았다. 4월에 교생 선생님이 우리 반에만 오게 되었는데, 젊은 여자 교생 선생님을 본 아이
요즘 중학교에서는 교과목 수업 못지않게 체험활동을 중시한다. 예전에는 정규수업을 하지 않고 학급 전체가 하루 종일 체험활동을 나간다거나 학급 야영을 위해 이틀씩 수업을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일들이 낯선 풍경이 아니다.가장 하기 쉬운 학급 체험활동은 수업 중에 화채나 샌드위치 등 비교적 간단한 먹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담임교사들은 주로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후 이러한 행사를 계획하는데, 더위에 지치고 긴장이 풀린 학생들도 이때만큼은 일사불란하게 의논하고 준비도 알아서 다 해온다. 학생들은 모든
중학교에서 ‘반티’(학급 단체 티셔츠)는 반 전체의 자존심과 반 학생들의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새 학년 진급 후 형식적인 학급회의를 진행하다가 처음으로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 것도 반티를 결정할 때다. 분열과 갈등, 눈물, 그리고 뒷담화를 거쳐 투표로 마무리 짓는 중요 의제가 반티 선정이다. 온갖 혼란을 거쳐 의견이 어느 정도 모아지면 ‘추진단’ 학생들은 혹여 다른 반과 콘셉트나 디자인이 겹치는지 알아보고 반 대표끼리 조율을 통해 최종적으로 반티를 정한다. 추진단은 이런 과정을 반 학생들에게 실시간으로 공개하며
모든 여행은 소중하고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하지만 중학교 교사로서 아이들을 인솔하고 가는 여행은 더 특별하다. 생각해 보라. 천방지축 혈기왕성한 40명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2박3일을.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이보다 더 특별할 순 없다. 내가 10년 전에 근무하던 학교는 남자중학교였다. 1학년 담임을 맡은 어느 해, 나는 학생들을 인솔하여 수련회를 가게 되었다. 중간고사 다음 날로 일정이 잡혀 다들 홀가분하게 여행을 가겠구나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수련회 첫날부터 열감기 환자들이 속출한 것이다.수련원에서 첫날 일정
우리 학교에는 밥만 먹고 사라지거나, 밥 먹기 위해 나타나는 ‘밥돌이’들이 있다. 이들 문제아들이 그나마 수업에 참여하는 것도 점심 급식 전후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던 시절이라면 이들은 점심시간을 더 견디기 힘들어했을 것이다.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한 채 쫄쫄 굶는 게 괴로워서라도 점심시간에 모습을 감췄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문제아들은 점심 급식 시간만은 꼭 챙긴다.2000년을 전후로 조리실 건립 등 학교 사정에 따라 학교 급식이 순차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때는 주로 학교와 계약을 맺은 외부업자가 학교 급식을 담당했기 때문에 급